최근 드라마 두 편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사극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서자 신분으로 왕세자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으나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면 신체 특징, 목소리, 걸음걸이 등의 특징을 기억하여 사람을 구별한다. 출세에 방해가 될까 이 같은 사실을 숨겼으나 촌부가 되어 있는 왕세자를 바로 알아보지 못해 결국 들통이 난다. 또 다른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동차 사고 이후 사람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안면실인증(prosopagnosia) 환자이다. 그는 한 달에 일주일 타인의 얼굴로 살아가는 여배우를 사랑하지만 같이 바라보는 광고판 속의 연인의 모습도, 변해버린 얼굴로 나타난 연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슬픔이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복면가왕'이 여전히 인기이다. 등장하는 연예인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판정단과 시청자는 감상을 나누며 가수의 실력을 평한다. 앞서 두 드라마가 안면 인식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이 주요 관심사라면, 복면가왕은 인식해야 할 인물의 안면 정보를 감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방송의 묘미는 경합 방식의 노래 대결에서 가수가 탈락하여 복면을 벗고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는 순간이다. 판정단이나 시청자들은 궁금증이나 기대감에 복면을 주시하다가 복면이 벗겨진 순간 반가운 얼굴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의외의 인물에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드라마나 방송에서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짧은 시간이나 낯선 장소에서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기억해야 할 '안면'이 급속히 늘어나는 때가 그렇다. 한편으로는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목소리나 문체 등으로 사람을 유추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낯익은 얼굴을 보면서 도대체 누군지 생각나지 않아 어색한 미소만을 지어야했던 경험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자주 모니터링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심코 흥미로운 글을 읽고, 글쓴이가 궁금하여 아이디를 확인해 본 경험도 드문 일은 아니다.
 친근한 관계의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얼마 전 소개 받은 그가 도대체 누군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은 참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런데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해 몇 번 낭패를 본 사람 중에는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게 반갑게 다가오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오해를 받는 경우이다.

 가족이나 사진 속 자신의 얼굴까지 구분하지 못하는 심한 안면실인증을 제외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는 안면이 아닌 다른 특징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유전적인 요인도 있고 살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훈련 된 사람이 있다. 또 일부는 안면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싶어도 인식하는 능력이 일반적인 기대치보다 낮아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후천적인 사고나 뇌경색, 치매 등 병적 상황에서 확인되지만 일부는 선천적 요인도 있다. 사람의 안면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체형, 걸음걸이 등의 외관상 특징에 보다 집중한다. 오늘 만날 누군가도 아마 나의 얼굴보다는 나의 다른 특징에 깊은 관심을 보이리라. 옷 매무새를 다시 만지게 된다.

   김영전 교수(의과대학 의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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