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초 한자를 배워야 국어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국어의 이해력을 높이는 데는 물론 작문 실력을 늘리는 데도 기초 한자 공부가 꼭 필요하다. 우리 말 어휘의 60% 이상이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모르면 정확한 의미 파악은 물론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재와 결제, 보상과 배상, 혼동과 혼돈, 충돌과 추론 등을 정확하게 구별할 방법이 없다. 맞춤법만 하더라도 한자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원칙을 지키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사이시옷이다. 사이시옷은 한자어와 고유어를 식별하는 능력이 없으면 사실상 어법에 맞게 표기할 수가 없다. 수도세와 수돗물의 표기 차이를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또 장단음을 구분하여 표준 발음을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자를 모르니까 국어국문학과가 무엇을 가르치는 학과인지 모르고, 사범대학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또 사범대학에서는 왜 '영어교육학과'라고 하지 않고 '영어교육과'로 명명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한자어의 속뜻을 모르기 때문에 대상을 두루뭉술 파악하게 되고, 이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물론 인터체인지를 '나들목'으로, 노견(路肩)을 '갓길'로 순화시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또 이런 국어순화 운동은 꾸준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비행기(飛行機)를 '날틀'로, 편도선(扁桃腺)을 '입속복숭아줄'로, 탑(塔)을 '돌무더기'로 부르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헌(軒) 재(齋) 옥(屋) 대(臺) 관(館) 등을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집'으로 통칭하면 우리말 어휘는 그만큼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국어 기본법에 따라 한글로만 표기하면 정보처리 면에서는 다소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 어렸을 때 구구단을 외워두면 평생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한자 공부도 조기에 해 두면 많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가능하면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치면 좋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늦지는 않다. 문제는 한자를 외면하기 때문에 대학생도 자기 이름은 물론 부모님 성함을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학의 교양국어나 글쓰기 강좌에서는 한자 공부를 도외시하고 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작문 교재인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에는 한자가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전문 학술용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바르게 펼치는 올바른 글쓰기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이봉창 의사가 내과의사인지 외과의사인지 묻고, 위문편지에 '그럼 국군장병아저씨의 명복을 빕니다'와 같이 끝맺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 또 '학생회 대여사업', '수업전면파업'이 왜 틀린 표현이며, '신입생 대면식'보다 '신입생 상견례'가 왜 더 나은 말인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혹자는 한자(漢字)를 한(漢)나라 글자로 잘못 알고 있다. 한의학이 한(漢)나라의 의학이 아닌 관계로 한의학(漢醫學)에서 한의학(韓醫學)으로 바꾼 것처럼, 한자도 중국 한나라의 글자가 아니다. 한자는 아시아의 국제 언어로, 임어당(林語堂)박사가 일찍이 밝힌 바대로 우리 조상인 동이족이 창제한 문자다. <門>을 일본은 <몬>, 중국은 <먼>, 한국은 <문>이라고 발음한다. 한자는 아시아인 모두의 자산이자 공통의 문화유산이다. 알파벳이 영국의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한자는 중국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이다. 표음문자인 한글과 표의 문자인 한자는 한국어라는 수레를 끄는 두 개의 바퀴와 같고, 새의 두 날개와 비슷하다. 서로 보완하면 우리말은 그만큼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자(訓民正字)라고 하지 않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명명한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영길 교수(문예창작학과)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