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더 나은 언어생활을 위한 우리말 강화』(최경봉 지음, 책과함께, 2019)의 내용 중 일부를 가져온 것입니다.  /편집자

 
 한 낱말의 의미와 가치는 그와 관련한 낱말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그러니 한 낱말의 의미와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 낱말의 관계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낱말의 관계망을 통해 한 낱말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사의 관계망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음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낱말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되는 맥락을 살펴보자. 
 
 첫째, 수우미양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글에서 많이 인용되는 책이 한동일 신부의 '라틴어 수업'이다. 관심을 받은 부분은 라틴어에서 성적을 표시하는 말에 대한 것. 라틴어 '숨마 쿰 라우데 / 마그나 쿰 라우데 / 쿰 라우데 / 베네'는 성적의 등급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는 우리말로 '최우등 / 우수 / 우등 / 좋음·잘했음'이라 한다. 이를 인용한 이들은 한결같이 평가가 긍정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감탄한다. 저자 말대로 이러한 평가 어휘는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니, 서열화에 익숙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성적 평가 어휘인 '수(秀) / 우(優) / 미(美) / 양(良) / 가(可)'도 남부럽지 않게 긍정적인 말이다. 가장 낮은 성적이 '옳거나 좋음'을 뜻하는 '가'이니, 말 그대로만 보면,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허무하게 느끼는 건, 다섯 등급으로 나뉜 성적 어휘장의 위계 속에서 '수, 우, 미, 양, 가'의 뜻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노골적으로 1, 2, 3, …, 9등급으로 나누는 요즘의 성적 평가가 담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휘장을 이루고 있는 낱말의 의미는 그 어휘장 속 다른 낱말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어떤 말로 성적의 등급을 표현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열린 표현인 '수, 우, 미, 양, 가'를 단정적이고 닫힌 말로 만든 건 우리 사회였으니. 결국 바꿔야 하는 건 성적의 등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성적의 등급으로 누군가를 단정하려 드는 서열화된 사회인 것이다. 
 
 둘째, '늙은이'와 '어르신'
 
 '늙은이'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이다. 어떤 가치 판단도 들어가지 않은 뜻의 말이다. 그러나 현실 언어에서는 '늙은이'는 비하의 뜻이 있는 말로 인식된다. 이처럼 '늙은이'를 비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건, 세월이 지나면서 '늙은이'라는 말의 가치가 하락한 결과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뜻을 담아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어른을 이르는 말인 '젊은이, 늙은이'와 같은 형식으로 만듦으로써, 어린아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어린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1920년대만 해도, '늙은이'는 '나이 많은 어른'을 이르는 일반적인 말이었다. 
 '늙은이'라는 말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 배우의 근황을 소개하는 문화면 기사의 제목을 "팬들의 매혹 속에 인기가도 10년, 젊은이 役서 늙은이 役까지도 척척"(매일경제, 1969.11.3)이라 할 정도로, '늙은이'는 1970년대까지 가치 중립적인 말로 폭넓게 쓰였다. 그런데 가치 중립적인 표현으로 '노인'을 선택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자, '늙은이'란 말은 나이 든 사람을 비하하는 맥락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노인'을 '어르신'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던 건 '노인의 날'을 제정하면서부터다. '남의 아버지를 높이는 말'인 '어르신'을 사용함으로써 노인 존중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어르신'을 모든 노인을 대접하는 말로 굳이 확장해 쓰게 된 건, '노인을 대접해 이르던 말'인 '영감(님)'의 가치가 하락한 상황과도 관련된다. 한 낱말의 의미와 가치는 그와 관련한 낱말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셋째, '보수(保守)'와 '수구(守舊)'
 
 '보수(保守)'는 근대 초 일본에서 'conservative'의 번역어로 채택한 말이다. '보수'가 등장하기 전에는 'conservative'의 번역어로 '수구(守舊)'라는 말이 쓰였다. '수구'가 처음 등재된 사전은 중국에서 발행한 로브샤이트(W. Lobscheid)의 『영화자전(英華字典)』(1866)이다. 이 사전에서는 '수구'라는 대역어 아래 '수구법자(守舊法者)', '수구지리(守舊之理)' 등을 제시했는데, 이는 '보수주의자', '보수의 원리' 등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수구'라는 낱말이 쓰이고 있었음에도 왜 굳이 그와 비슷한 의미의 '보수'를 따로 만들어 쓰게 되었을까? '보수'라는 말이 만들어진 이유는 '보수'의 등장 이후 '수구'와 '보수'가 쓰이는 맥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당시 한중일 세 나라에서 수구'는 봉건적 문화와 제도를 고수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데 주로 쓰이고, '보수'는 서구의 정치 이념을 가리키는 데 쓰였던 것이다. 
 19세기 말의 신문에서 '수구당(守舊黨)' 혹은 '수구파(守舊派)'는 개화와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반면, '보수당(保守黨)' 혹은 '보수파(保守派)'는 서구 정치 제도 내의 정당이나 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보수'가 정치 용어로서 '진보'의 상대어로 쓰였다면, '수구'는 '개화'에 반대하는 현실 대응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던 것이다. '개화한 생각'과 '수구한 생각'이란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수구'와 '보수'가 이러한 의미와 용법으로 쓰이게 되면서, '수구'에는 '퇴행'의 의미만 남게 되었다. '수구 보수'라는 익숙한 듯 어색한 표현에서 우리는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진 '수구'의 의미를 목도한다.
 
최경봉 교수(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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