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영두 교수​​​​​​​ (경영학부)
 

 나는 살아가면서 "왜 살지?"라는 회의적 의문을 가진 사람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지?" 라는 실천적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전자가 매사를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후자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천의지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자아실현을 위한 분투노력奮鬪努力의 과정이요, 목표 달성을 위한 악전고투惡戰苦鬪의 도장道場이다'라고 설파한 어느 학자의 말에 나는 큰 공감을 합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는 일도 없고 인생의 꿈과 목표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무척 처량한 생각이 듭니다.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나'라는 생명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법입니다. 극단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나'라는 생명체가 없다면 우주 공간의 모든 것과 무슨 상관성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지고 보배롭기 때문에 아끼고 성장 발전시켜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시간 100년 안쪽일 텐데 이왕이면 멋지고 재미있고 행복한 삶이 영위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사를 보면 그냥 공짜로 되는 일은 없는 법, 뿌린 만큼 거두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에 입각할 때 젊은 시절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보람과 명예도 남겨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이 소중한 '나'를 학대하고 홀대하며 아끼지 않고 내쳐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는 일이 어렵다던가, 안 되는 일이 많다보면 포기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도 충분한데도 보완할 노력은커녕 현실적인 상황만을 보고 실망으로 일관하는 자들에게는 걸 수 있는 기대는 없다고 봅니다. 결국 내가 '나'를 소중하고 보배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습니까? 형제나 부모나 일가친척들이 내 대신 살아 줄 수 있을까요?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인생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지 나를 미워하고 무관심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생은 '나'를 중심으로 한 평생을 전개시키면서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나'를 사랑하고 '이웃'에 봉사하며 '전체'에 기여하면서 그 속에서 삶의 가치도 찾고 보람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인간은 유일성의 생명이요, 일회성의 인생이라 합니다. 권투시합으로 비유하면 연습도 없고 2회전, 3회전도 없는 1회전으로 끝나면서 결승전인 것이죠. 오직 나의 인생을 나의 계획과 나의 판단과 나의 의지에 따라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서 그 결과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인생은 쓰러지는 그날까지 연속성, 지속성을 갖고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여기에 자신이 무슨 의미와 가치를 담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코로나19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즈음, 지나온 세월도 뒤돌아도 보시고 앞날에 보배로운 '나'를 어떻게 가꾸면서 사랑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온영두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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