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한다. 여학교 때는 매주 TV의 〈주말의 명화〉 보느라 밤잠을 설쳤고, 대학 때는 목요일 2시마다 〈목영〉 을 보러 자연대 건물로 달려갔다. 유학 중에도 영화에 빠져 교내 극장, 학생회관 강당, 예술대 건물을 드나들었고, 학교에서 못 보는 걸작은 클리블런드 시내의 시더 리(Cedar Lee) 극장까지 가서 보고 왔다. 아파서 휴직했을 때 처음으로 밖에 나간 것도 〈캐롤〉 개봉 때문이었다. 
 책 수집가들이 초판본 구입에 큰돈을 쓰듯이 영화마니아도 개봉 당일에 그 작품을 봐야 한다는 묘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똑같은 영화인데 왜 아이패드나 넷플릭스가 아니라 극장에서, 그것도 꼭 개봉한 날 봐야 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지만,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니 무리해서라도 가는 것이다. 영화의 개봉일은 물론, 시네하우스라는 한국 최초의 예술전용관이 생기자 그 개관일에 가서 첫 상영작인 〈아마데우스〉를 보기도 했다. 그런 식이니 마니아의 삶은 고달프고 불편하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이게 정상인가?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엊그제 새벽 〈헤어질 결심〉을 네 번째 보다가 잠깐 그런 회의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꼭 확인할 부분이 있어서 결국 끝까지 보고 말았다.
 그러나 의심은 잠시, 역시 마니아의 삶은 평생 즐겁다. 대학 때 〈목영〉에서 처음 본 프랑스 고전영화부터 최근에 본 〈타르〉까지, 위대한 영화들은 내 삶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동력, 도반(道伴)으로 존재해 왔다. 같은 영화를 너덧 번 보고, 가까운 데 상영관이 없으면 기차로 타 도시에 가기도 하고, 다른 관객이 없어 텅 빈 대형 극장에서 친구와 둘이 인도 영화 〈파이어〉를 보며 무서움에 떨기도 하고, 내가 공들여 번역한 이디스 워튼의 소설 『순수의 시대』를 각색한 마틴 스코시스 감독의 영화를 보며 원작과의 차이를 일일이 적어보기도 했다. 장국영의 〈패왕별희〉는 미국에서 처음 본 후 극장과 비디오테이프로 몇 번을 보았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학창 시절 〈터미네이터 2〉를 본 날은 극장이 거의 우리 학교 학생들로 꽉 차 있었는데, 제일 무서운 장면을 보던 중 갑자기 불꽃이 튀고 정전이 되자 모두 우르르 뛰쳐나갔다. 그런데 밖은 하늘을 찢을 듯 요란한 천둥 번개로 더 공포스러워서 다 같이 깔깔 웃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그다음 장면부터 보기도 했다. 영화는 혼자 봐도 좋고, 같이 보면 더 좋고, 〈터미네이터 2〉처럼 특이한 상황 때문에 더 신나는 경우도 있다. 중고생들이 학교를 안 가는 수능 날 극장에 가서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로코 영화를 보면 수백 명의 여학생과 함께 그 배우의 눈짓, 손짓 하나에도 극장이 떠나가라 웃거나 한숨 짓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영화 덕분에 나는 평생 갈 일 없는 스페인의 고산 지대나 노르웨이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기도 하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미소년 안티누스의 사랑을 오마주한 최근 개봉작 〈피터 폰 칸트〉를 보며 비극적인 짝사랑에 눈물짓기도 하고, 〈타르〉 덕분에 베를린 필의 무대와 연주자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들을 수도 있었다. 〈붉은 수수밭〉 덕분에 인간의 잔혹함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고, 〈피아니스트〉에서는 쇼팽의 발라드 한 곡이 상상할 수 없는 전쟁의 폭력 속에서 인간의 연대와 존엄성을 지켜주는 광경을 목도하기도 했다.
   사람이 85년을 살아도 총 4,400여 주에 불과하다. 80년이면 4,160주. 이렇게 짧은 삶에서 무엇이 자신에게 평생 기쁨과 보람, 연속성, 성취감, 위안을 줄 것인지, 늦어도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확실히 찾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며 다채로운 의미를 선사하고, 꽤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도 전혀 아깝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즐기고 토론할 수 있는 어떤 활동, 그 하나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 가지 미션이다.

손영미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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