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추곡(秋谷)의 '대낭' 문구를 떠올린다. "대나무는 모진 눈보라와 북서풍 덕분에 곧고 맑은 나무로 자란다." 대낭은 제주어로 대나무를 뜻한다. 무심하게 하늘로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을 바라보거나 걷다 보면 상념에 젖을 수도 있고,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있다. 외부로부터 차단돼 고립된 느낌이 들다가도 숲 사이사이로 소통하는 기운에 힘입어 왠지 모르게 다짐을 하게 한다. 
 우리사회의 사월은 어떤 이미지일까.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에 숙연해야 할 추념일이 있다. 최근 제주 4.3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리기 위한 노력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이 기록유산은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이란 정식 명칭으로 1992년부터 시작됐다. 진정성, 독창성, 비대체성, 세계적 영향성, 희귀성, 원형여부 등을 총체적으로 판단한다. 제주 4.3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 때 당시 경찰의 발포사건에서 비롯돼 1948년 4월 3일 무장대의 봉기를 거쳐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무려 7년 7개월 간 지속됐다.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교전과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것이다. 진상보고서에는 1만 4천여 명, 많게는 3만여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잠정 보고되고 있다.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진상규명은 1980년대 후반에 와서 비로소 민간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 1월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졌고, 2003년 정부보고서가 공식 발간됐다. 그 해 대통령이 국가권력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부차원에서 공식 사과했다.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고, 2021년 4.3 특별법이 개정되고 유족 보상, 직권재심, 추가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시작됐다. 
 제주 4.3 기록물은 제주의 유산으로 그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맞이했고,  이념 대결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전세계적인 대가는 자국 내에서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권력 추종자들은 민간인 학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국가 폭력에 의한 집단 희생의 아픔이 진실, 규명, 화해, 상생을 이뤄 과거사 해결 사례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 받고 있다.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자격은 충분하다. 
 많이 규명됐지만 4.3이란 글자 뒤에 아직도 후속 단어를 이름 짓지 못하고 있다. 4.3 뒤에 사건, 학살, 봉기, 민중항쟁 등 여러 의견이 존재하지만 한가지로 특정 짓기엔 매우 복잡한 특성을 갖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그려넣는 데 시발점이 된 얼룩으로 잘 지워지지 않는 컨버스와 같다. 건국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매듭이 풀려야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정치 구조의 현실이 이해가 될 수 있다. 요즘 부쩍 오염된 언어가 난무하다. 
 우리사회의 오월은 어떤 이미지일까. 아이들이 꽃과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가정의 달이자, 자랑스러운 광주 5.18 기념일이 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완장을 찬 부류들의 오염된 언어가 아무렇지 않게 준동할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오랜 기간 동안 광주사태로 불렸듯, 의도적 축소 혹은 폄하를 노리는 세력의 언어가 항상 있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책임자 개인의 사과 한 마디 없이 많은 국민에게 깊은 한을 남겼다. 제주 4.3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원망의 기억이고, 광주 5.18은 책임자의 처벌 없는 황망한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왜곡을 해도 진실한 언어를 누를 수는 없다. 비록 속도가 더딜지라도 역사의 교훈을 흔들 수가 없다. 기억은 망각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서 숨을 쉬기 때문이다. 생생한 기억은 그 삶을 오롯이 겪은 세대만이 안고 있다. 그 지난한 세월을 이겨낸 세대의 언어는 영원할 것이다.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해야 지금 이 시대의 현상이 보인다. 너무 쉽게 휩쓸리지 말자. 오염된 언어를 거를 수 있어야 한다. 세치 혀에 기대지 말고 오염된 혀 놀음을 멀리하자. 품격을 갖춘 자신만의 누군가로부터 배우며 몸과 마음을 정돈해 보자.
   시인 추곡의 시심으로 담긴 언어,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로 세상을 살고, 외롭고 허전할 때 대낭 생각하며, 더 곧고 밝은 세상 살고자 애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이 꿋꿋하게 지내고 있다. 곧고 맑은 대나무처럼.  

 문개성 교수(스포츠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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