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서울의 한 학교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교사의 뉴스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악성 댓글과 사이버 불링에 시달리는 연예인, 상급자 폭언을 비롯한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의 사망 뉴스도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직업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청소년들이 자신의 자살 장면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유명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인물 등의 죽음을 자신과 동일시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현상인 베르테르 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언론은 자살이란 표현 대신 완곡하게 '극단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전염 효과와 모방 심리를 막기 위해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자살이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에 나온 자살 장소가 일종의 자살 명소가 되는 상황에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사람들의 자살에 대한 소망을 실행으로 옮기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자살이 선택지가 되는 사회를 살고 있었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 외에는 선택지가 없던 사람이 과연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가늠도 되지 않는 고통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던 그들의 문제를 정면 응시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목숨이 '자살'이란 이름으로 스러져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진단도 있다. 죽음으로 내몰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강요임을 인지하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삼가 유족들이 고인을 충분히 애도하고 힘든 상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현서진(문예창작학과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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