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모 대학 학생으로부터 성적과 관련된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 메일을 공유하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이번 00년도 0학기 000강의를 수강한 00대학교 000입니다. 원격 수업이었지만, 이번 학기에 교수님 강의 내용이 유익하고 재밌어서 열심히 들었던 강의 중 하나입니다. 특히 5주차의 강의내용 중 (중략)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성적에 대해 의문이 들어서 이렇게 갑작스레 연락드립니다. 출석도 모두 했고, 중간 기말 시험 성적도 (중략) B가 나와 당황스러워 바로 연락드린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성적이 이렇게 나온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연락 꼭 기다리겠습니다. 
 성적에 대한 연락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메일 보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며 마지막 수강 과목이었는데 이번 강의 들으면서 정말 배운 것도 많고, 알게 된 것이 많아 기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남은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전북의 여러 대학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는 온라인 교양 강좌를 제작해 매 학기 운영하고 있다. 이번 학기만 해도 수강생이 300명에 달한다. 수강 인원도 많고 저마다 소속이 다르다보니 요구 사항도 가지각색이다. 공개한 메일도 그 중 하나다. 성적 수정을 요청하는 메일치고는 점잖다. 어이없는 성적을 받아 놓고 교수를 칭찬하다니. 수신자에 대한 배려에 진정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진정성을 마음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다. 
 나는 메일을 읽고 학생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 학생은 매사에 침착하고 문제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기도하다. 온라인 수업임에도 스스로 학습한 내용을 평가하고 의미를 찾고 있다. 이러한 성실함이 큰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과 같은 평가를 덧붙인다. 이 학생은 용모도 단정하고 음성도 듣기 좋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랑받는 사람일 것이다. 메일 한 통 받고 비약이 심하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적 평가는 독자의 권한이기도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메일을 몇 통 더 받았다. 구성도 모두 비슷하다. '첫인사, 보낸 사람 신분 밝히기, 강의에 대한 느낌 전달, 문제 상황(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객관적 정보 전달, 수신자를 배려하는 마무리 인사'순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메일을 보내온 학생들이 모두 전북의 모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구성이 비슷하다는 것은 누가 가르쳤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상대를 배려하는 게 기본이다. 막연한 배려를 넘어 호혜성의 원칙을 지켜간다면 그보다 좋은 의사소통은 없을 것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 대학에서는 가르쳤고 나는 가르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간 내가 대단한 글쓰기를 한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보낸 '친절한 메일'을 받고 내가 보낸 메일함을 들여다봤다. 나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난 학기 이후 나도 몇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메일 쓰기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대학을 떠나도 이러한 글쓰기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부를 떨자는 게 아니다. 글쓰기는 독자에 대한 극진한 봉사이며, 상호 존중이라는 틀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그 정도 소양은 이미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를 꼰대라고 할 수도 있다. "그깟 메일 한 통가지고…"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깟 메일 한 통'에 제 마음을 정성스럽게 담지 못하는 젊은 꼰대가 많아지는 것보다는 낫다. 모든 글쓰기는 삶의 문제로 시작해서 삶의 문제로 귀결된다. 친절함은 친절함을 낳는다. 이것만큼은 만고의 꼰대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덕민 교수(자율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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