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나는 여행을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목적이라든가 혹은 애초의 목적지라든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떠돌아야겠다는 생각 뿐, 그러므로 이 기행문의 내용은 여행에서 본 풍경 스케치보다는 그 여정에서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단상의 나열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여행을 종료하면서 결국 이 여행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는 어떤 질문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네 꿈은 무엇이니?'


 그 때의 길은 보드라웠다.
지도를 쥐고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다. 몇 권의 책과 노트를 집어넣은 배낭을 멘다. 송정리발 티켓은 사실 목적지가 없다. 나는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내가 이 땅 위에서 밟을 수 있는 흙은 얼만큼 될 것인가를 재고 싶다.


 가까운 시각에 출발하는 기차편은 서대전역이다. 한여름 주말 정오의 햇발은 정처없다. 전라선의 선로처럼 '징허게' 맵고 짠 볕이 차창으로 함부로 쳐들어와 여행 출발의 설렘을 한층 더 돋운다. 창 밖의 풍경들이 좀처럼 이어붙지 못하고 자꾸만 덜컹덜컹 잘리느라 쉴 틈없다. 이 여행의 끝은 어디가 될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대전역에서 내려 근처 예술영화전용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본다. <여기보다 어딘가에>라는 이 영화는 마침 나와 당신을 보여주고 있다. 꿈을 꾸는 사람, 오직 젊기에 꿈을 꾸는 우리들은 배고프거나 외로워도 오직 간절한 그 하나, 그 하나의 꿈을 위해 오늘을 산다.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지 않는지 기약도 없이 오늘을 산다. 그 때 문득 주인공 수연의 대사가 울린다. "넌 꿈이 뭐니?"


 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 밖으로 나오니 어느 새 밤으로 물들어 있다. 이름 모를 저 수많은 사람들은 저녁의 옷을 입고 저녁의 대화를 나누고 저녁의 밥을 먹고 저녁의 익명성을 밟는다. 마치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잃은 먼 행성같다. 궤도에서 이탈한 행성들이 그려내는 하나의 추상같다.


 다시 기차를 탄다. 역시 특별한 목적지 없이 가까운 시각에 맞춰 티켓을 끊는다. 역무원이 내민 행선지는 부산이다. 부산으로 가는 밤기차에선 비릿한 사투리와 부유(浮游)의 맛이 배어난다. 좀전의 대전역에서 마주했던 무명의 행성들이 따라와 붙는 것처럼 차창 밖에선 자꾸만 붉은 가로등의 기척들이 문득 부딪혔다가 재빨리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정착이 불가능한 저네들의 사그러드는 빛을 까만 어둠에서 하릴 없이 쳐다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새벽 두 시 넘어 부산에 도착한다. 부산의 밤을 찾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문득 떠나고 싶을 때였던가 두어번 심야버스를 타고 부산을 찾곤 했다. 먹잇감을 포획하기를 기다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 역전에 대기한 택시들. 그 중 한 대를 골라잡고 무작정 해운대로 간다. 이 시각 해운대는 여전히 암흑인 줄 알면서도 간다. 아득한 그 암흑은 어리석은 꿈을 밀쳐내지 않을 것이리라 안도하면서 간다.


 해운대에는 지독한 암흑만 철렁거리고 있다. 이내 나는 소리를 지른다.
"네 꿈이 뭐니-이-이-이-이?!!!!"
응답은 없고 무심한 파도소리는 멈출 줄 모른다.


 나는 동녘이 시퍼렇게 열릴 때까지 그 곳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어떤 곳,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날 아침 예의 그 붉은 해가 떴었는지 모르겠다. 비가 왔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당신의 하루도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밤이 오질 않았는가? 그러므로 꿈을 꿀 일이다.
그 때의 길은 분명 보드라왔다.

 
김은묘 (한국어문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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