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그라다 파밀리아

 흔히들 유럽 여행이라 하면 괜히 모를 낭만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남들처럼 프랑스나 스위스 같은 곳이 아니라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가고 싶었다. 별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예전에 클래식 기타를 배우던 시절 좋아하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곡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럽 여행에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알함브라 궁전 대신 바르셀로나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일주를 하면서 20일이 넘는 강행군 탓에 몸은 지쳐 있었고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이동하기에는 2일 일정이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기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일간의 바르셀로나 일정은 나에게 ‘가우디'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다음 목적지인 파리로 가기전에 쉬어간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가이드 북에 소개돼 있는 가우디에 대한 내용을 읽는 순간 가우디의 흔적을 느껴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수 많은 건축학도와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고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유가 가우디 때문 아닌가.

 가우디의 건물을 실제로 보고자 가이드 북과 지도만 챙겨들고 숙소를 나섰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묻어나는 가우디의 위대한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성가족 성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성가족 성당의 원래 명칭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특히 성가족 성당은 지금까지 약 100여 년이란 기간동안 만들어졌다. 말년의 가우디는 모든 건축 활동을 중단한 채 성당 건축 현장을 지켜보면서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건축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알고 그들의 의견을 이론에 반영하기도 했다. 또 오직 헌금과 기금만으로 공사가 이뤄졌기에 건축기금이 없을 때에는 손수 거리에 나가 기부금을 모았고, 한 장씩 쌓여 올라가는 벽돌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이런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 생전에 완성되지 못했다.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가우디가 죽고 난 지금까지도 성가족 성당의 입장료와 기부금 등으로 완공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20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완공된 성가족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포기하지 않는 가우디와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민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어떤일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쉽게 끊고 쉽게 식는다. 특히 독도문제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언론에서 대대적 보도가 있은 후에는 다들 분개해서 일본 물품을 사지 말자는 둥 반일감정에 휩싸이다 어느 순간에서는 또 일본을 찬양하듯 좋아한다.

 당시에만 뜨거워졌다 뚜렷한 해결책이나 대안없이 사그러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내 대(代)에 완성되지 않음에도 여유를 가지고 조급함 없이 300여 년에 걸친 공사를 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인내력과 끈기가 새삼 부러웠다.

 보다 넓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행동으로써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급한 것도 좋고 빨리빨리도 좋지만 좀 여유를 가진 넉넉한 모습으로 낙천적으로 사는 편이 좋지 않을까!

박 현 상 (전기전자 및 정보공학부 4년)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